2013.03.27 11:30

우정박물관을 나와서 다다른 곳은 <유관순 열사 사적지>였습니다.

무척이나 좋은 날씨에 많은 분들이 유관순 열사 사적지를 찾고 계셨습니다. 교회에서 단체 관람 오신 분들이 많으셨는데, 아마도 유관순 열사가 기독교인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도슨트가 처음 우리를 안내한 곳은 유관순 열사 조각상 앞!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애쓴 열사를 위해 만세 삼창을 하였습니다.

 

 

기념관 앞에는 타임캡슐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아우내 만세운동 백년 후 묻힌 타임캡슐은 묻힌 지 백년 후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봐왔던 유관순 열사의 사진은 참으로 무서웠었습니다. 16살 꽃다운 나이라 믿기지 않을 그런 모습이였는데, 이 모습은 일본인들에게 고문을 당한 후 찍힌 사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새로이 옛 모습을 기초한 초상화가 제작이 되었는데, 그 모습에서도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인 열린 마음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의 집안은 대대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다고 합니다. 부모님도 독립운동 중에 돌아가시고, 감옥에서도 끌려온 오빠를 만났으니 그 기구하고도 치열한 삶이 가슴에 아프게 닿았습니다.

 

 

 

당시, 거의 모든 금속들이 전쟁 물자로 징발될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독립투사들은 쇠고랑을 차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쉬지 않고 계속 만세를 불렀기 때문에 무거운 쇠고랑을 채워 만세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놈들이 행한 수많은 고문들 중 벽관을 이용한 고문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보통 사람들도 대 여섯 시간이면 온몸에 마비가 오는 그곳에 며칠 씩 열사를 가두어 두었다고 하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에 울컥하게 되더군요.

 

 

만세운동 당시 사용되었던 태극기와 유관순 열사가 손수 뜬 뜨게모자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참, 솜씨가 곱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에도 얼른 재촉해서 유관순 열사 추모각에 올라가 봤습니다.

 

 

 

유관순 열사 추모각 오른편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순국자 추모각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는데 그 분들의 이름조차 알 수 없다니 참으로 통탄해마지않을 현실입니다.

 

 

추모지를 떠나 다시 유관순 열사 생가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독립운동 전 날, 태극기를 만들던 열사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생가 옆에는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 교회가 아직도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집이 불타 살 곳이 없었던 유관순 열사의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 나라에서 지어준 기와집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이곳 에서 살고 계셨다고 하네요.

 

 

내 나라 독립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던 날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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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8 14:19

 

 

 

오전에 캔 아트 체험전시장에서 체험을 마치고, 왠지 아쉬운 기분에 물어 본 근처에 가볼 만한 곳(?), <아산 이충무공 유허>!!! 이 곳은 결코 그저 근처에 볼 만한 곳이 아니더군요. 충분히 이곳만을 보기 위해서 먼 길 재촉해도 아깝지 않은 훌륭한 곳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한 곳이다 생각했는데, 어릴 적 다녀온 <현충사>더군요!! ^^*

 

우연히 들르게 된 <아산 이충무공 유허>, 조선 전기의 무신 충무공 이순시 장군의 고택과 사당이 있는 곳으로 <현충사>라고 합니다.

사적 제 155호로 1706년(숙종 32) 지방 유생들의 건의에 의해 세워졌으며, 1932년 전국민의 성금을 모아 현충사를 보수, 1962년에는 유물 전시관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1966년, 1967년에 걸쳐 경역을 확대, 성역화하였고,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현충사유적정비사업을 통해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현충사는 굉장히 넓은 곳으로 차근 차근 돌아보니 거의 2시간이 걸리네요. 너무 더운 날씨라서 걷기 싫었는데도 워낙 멋진 곳이라서 아이들이 투덜대지도 않고 잘도 다녔습니다.

 

 

새로이 건립된 곳이라 그런지 기념관의 내용이 정말 충실했습니다.

 

 

거북선의 장점과 왜선의 장,단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거북선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미니어쳐를 볼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현충사에 왔으니 당연 이충무공의 영정과 한 컷!

 

 

긴 칼 옆에 차고... 우산싸움이 아니라... ㅠㅠ

 

 

거북선의 다른 미니어쳐를 보았는데 정말 무적의 함선이라 불리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무공의 셋째 아들 이면의 묘소입니다.

이면은 어려서부터 인물이 출중하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해 충무공이 극진히 사랑하던 아들이였다 합니다. 하지만, 21세에 마을에 침입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하네요.

큰 뜻을 펼치지 못하고 너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해서 안타까웠습니다.

 

 

옛집을 가던 길에 있던 키 큰 나무 두 그루... 충무공의 충절만큼이나 곧고도 높았습니다.

 

 

충무공의 옛집으로 보성군수 방진의 무남독녀와 혼인하면서 이 집을 물려받아 살게 되었고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왔었다 합니다.

 

 

장군의 집치고는 검소하고 소박하더군요.

 

 

옛 우물과 장독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1967년 준공된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현충사의 본전입니다.

매년 4월 28일 이충무공탄신 기념다례행제가 열린다고 하네요.

 

 

이충무공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멋진 전경이네요~

 

 

이곳은 1932년 중건될 당시의 사당 본전으로 현재의 본전이 지어지면서 구본전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걸린 현충사 현판은 숙종이 내려준 것이라 합니다.

 

 

이 곳은 현충사 정려로, 정려란 충신, 효자, 열녀에게 임금이 편액을 내려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걸어두는 것을 말합니다. 현충사 정려는 이충무공과 그 후손 등 다섯 분의 층신, 효자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이곳 저곳을 두루두루 다니다보니 어느새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네요.

어릴 적 현충사하고는 참으로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때는 현충사는 그냥 작은 집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현충사는 어떤 추억으로 남을 지 궁금합니다.

 

 

 

 

 

 

Posted by 생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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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7 16:07





사상보다는 나라가 중요하다 - 백범 김구 기념관 : http://thinkhouse.tistory.com/187
안녕하세요, 김구 할아버지! - 백범 김구 기념관 : http://thinkhouse.tistory.com/188

2011.1.21

2시부터 겨울방학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따로 교육을 받는 시스템이였습니다.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리는 좀 아팠지만... ^^;


아이들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학부모와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생각 복 주머니를 만들었네요.


이후, 백범 김구 선생님의 묘소에 참배를 갔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묵념을 하는 아이들


때마침 넘어가던 햇살이 환하게 백범 김구 선생님의 묘를 비추어 주었습니다.


효창공원에 대한 역사를 배우며, 효창원이여야 하는 곳에 있는 삼의사의 묘도 따로 참배를 갔습니다.
이 삼의사의 묘에는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모셨으며,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허묘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사의사의 묘가 될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묘를 참배하는 아이들. 오늘 배운 것이 아주 많은 모양입니다.


집에 와서 아이들이 만든 생각 주머니를 보았습니다. 참 잘 만들었네요~ ^^*

오늘 하루 정말 뿌듯하고 즐겁게 보낸 것 같습니다. 오자마자 일기를 열심히 쓰는 아이들.
방학 프로그램은 오늘이 마지막이였고, 개학을 하면 주말 프로그램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독립과 통일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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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 백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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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7 16:01



2011.1.21

백범 김구 기념관에 갔습니다.


사상보다는 나라가 중요하다 - 백범 김구 기념관 : http://thinkhouse.tistory.com/187
안녕하세요, 김구 할아버지! - 백범 김구 기념관 : http://thinkhouse.tistory.com/188

아무래도 공부를 하고 가는 것이 나을 듯 하여 전날 백범 김구 선생님의 위인전을 읽었습니다.
모르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
생각해보니, 그냥 교과서에서만 배웠지 따로 공부하거나 책을 읽은 적이 없더군요.

오늘도 무척 추웠습니다. 역시 눈도 녹지 않았습니다.
기념관은 굉장히 웅장한 건물이였습니다. 기둥도 웅장해서 조금 위축되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사진은 기념관 입구에서만 가능했습니다.


기념관에서 본 내용을 에피소드별로 정리하자면...

김구 선생님의 태몽은 '밤송이'였답니다. 위인치고는 너무 평범하고 밋밋한 태몽입니다. 용이나 적어도 호랑이 정도는 되야... ^^;
태어나실 때도 엄청 난산이여서 어머니께서 7일간 진통을 하셨답니다.
황해도 해주에서는 이런 경우 아버지가 소의 길마를 등에 얹고 지붕에 올라가서 소의 울음소리를 크게 내면, 그 소리를 들은 아내가 소라고 착각을 하고 소처럼 힘을 써서 아이를 낳는다는 민간요법이 있었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한 후 김구 선생님이 태어나셨다고 하네요.
그런, 이런 난산을 겪은 후라 김구 선생님은 외아들로 자라게 되셨습니다.

자라면서 너무나 개구지게 자라던 김구 선생님은 아버지의 숟가락을 절반으로 잘라 엿도 바꾸어 먹고, 돈을 훔쳐내어 떡을 사먹기도 했답니다. 결국 굉장히 심하게 맞으셨는데, 그 때문은 아니고 당시 계급 사회의 신분차별을 겪고 양반이 되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부정부패로 얼룩졌던 당시, 매관매직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꿈이 좌절되어 괴로워하던 김구 선생님에게 아버지께서는 두 권의 책을 건내셨다고 합니다.
"관상학", "풍수지리"... 이 두 가지는 양반이 공부는 하지 않지만 궁금해하는 학문이니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김구 선생님은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관상이 너무나 복이 없음을 알고 실망하던 차, 관상학 책의 마지막에 적혀 있던 '관상이 좋은 것은 건강함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보다 마음이 좋은 것이 더 좋다' 라는 글귀를 읽고 호심인(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후, 동학운동, 의병활동, 치하포 의거, 파옥, 승려생활, 신민회 활동을 거쳐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이중, 신민회는 외적으로는 학교를 세워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고, 내적으로는 중국에 군학교를 세워 일본에 맞서자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일본에게 신민회가 발각 - 105인 사건 - 되어 15년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 일왕이 죽으며 국법에 의해 7년을 감형받고, 다시 일왕부인이 죽으며 3년을 감형받아 4년 8개월만에 출옥하게 됩니다. 참 재미있는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결국 우리나라는 연합군에 의해 독립을 맞게 되고, 또한 연합군에 의해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러나, 김구 선생님은 나라가 먼저지 사상이 먼저가 아니라며 통일을 주장합니다. 

이때, 김구 선생님이 북한의 조선어학자 김두봉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김두봉님과의 인연은 상하이 임시정부시절부터입니다. 당시 고생만하던 김구 선생님의 부인이 사고로 사망을 하자, 가난했던 형편으로 그냥 국립묘지에 매장을 하려고 하자, 상하이에 있던 동포들이 평생을 고생만 하던 분을 마지막까지 그럴 수 없다며 모금을 하여 묘비를 세워주게 됩니다. 이때 묘비 글을 김두봉님이 적는데 특이하게도 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이라는 글을 적습니다. 이는 숫자대신 자음으로 대신 한 것으로 4222년 3월 19일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이후 한글학자들에게도 좋은 연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두봉님은 사회주의자로 좌우익 독립운동을 전개하시던 김구 선생님의 뜻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김구 선생님은 열강에 의해 나라가 나뉘면 그들의 필요에 의해 분명히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이후는 더욱 통일이 어려우니 그러기 전에 통일을 해야한다고, 또한 후세에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친일파를 모두 없애야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런 김구 선생님을 곱게 볼 리 없는 친일파는 육군 소위 안두희를 시켜 김구 선생님을 암살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이렇게 민족의 큰 별은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 날은 6.25사변이 일어나기 1년 전 6월 26일입니다.
이후, 김구 선생님의 우려는 하나도 빠짐없이 이 땅에 벌어지게 됩니다.
이외에도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점차 엄숙해지더군요.


백범 김구 기념과의 2층에는 김구 선생님의 묘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묘소를 발견한 아이들이 굳이 큰 절을 하고 싶다고 해서 절을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런데... 그 절이 아니라니까... ^^;

백범 김구 기념관을 다 둘러본 후 오후에 있는 '안녕하세요, 김구 할아버지'를 체험하러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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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oer.christianlouboutinukr.com/ BlogIcon christian louboutin outlet 2013.04.06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라,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