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27 16:01



2011.1.21

백범 김구 기념관에 갔습니다.


사상보다는 나라가 중요하다 - 백범 김구 기념관 : http://thinkhouse.tistory.com/187
안녕하세요, 김구 할아버지! - 백범 김구 기념관 : http://thinkhouse.tistory.com/188

아무래도 공부를 하고 가는 것이 나을 듯 하여 전날 백범 김구 선생님의 위인전을 읽었습니다.
모르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
생각해보니, 그냥 교과서에서만 배웠지 따로 공부하거나 책을 읽은 적이 없더군요.

오늘도 무척 추웠습니다. 역시 눈도 녹지 않았습니다.
기념관은 굉장히 웅장한 건물이였습니다. 기둥도 웅장해서 조금 위축되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사진은 기념관 입구에서만 가능했습니다.


기념관에서 본 내용을 에피소드별로 정리하자면...

김구 선생님의 태몽은 '밤송이'였답니다. 위인치고는 너무 평범하고 밋밋한 태몽입니다. 용이나 적어도 호랑이 정도는 되야... ^^;
태어나실 때도 엄청 난산이여서 어머니께서 7일간 진통을 하셨답니다.
황해도 해주에서는 이런 경우 아버지가 소의 길마를 등에 얹고 지붕에 올라가서 소의 울음소리를 크게 내면, 그 소리를 들은 아내가 소라고 착각을 하고 소처럼 힘을 써서 아이를 낳는다는 민간요법이 있었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한 후 김구 선생님이 태어나셨다고 하네요.
그런, 이런 난산을 겪은 후라 김구 선생님은 외아들로 자라게 되셨습니다.

자라면서 너무나 개구지게 자라던 김구 선생님은 아버지의 숟가락을 절반으로 잘라 엿도 바꾸어 먹고, 돈을 훔쳐내어 떡을 사먹기도 했답니다. 결국 굉장히 심하게 맞으셨는데, 그 때문은 아니고 당시 계급 사회의 신분차별을 겪고 양반이 되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부정부패로 얼룩졌던 당시, 매관매직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꿈이 좌절되어 괴로워하던 김구 선생님에게 아버지께서는 두 권의 책을 건내셨다고 합니다.
"관상학", "풍수지리"... 이 두 가지는 양반이 공부는 하지 않지만 궁금해하는 학문이니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김구 선생님은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관상이 너무나 복이 없음을 알고 실망하던 차, 관상학 책의 마지막에 적혀 있던 '관상이 좋은 것은 건강함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보다 마음이 좋은 것이 더 좋다' 라는 글귀를 읽고 호심인(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후, 동학운동, 의병활동, 치하포 의거, 파옥, 승려생활, 신민회 활동을 거쳐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이중, 신민회는 외적으로는 학교를 세워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고, 내적으로는 중국에 군학교를 세워 일본에 맞서자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일본에게 신민회가 발각 - 105인 사건 - 되어 15년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 일왕이 죽으며 국법에 의해 7년을 감형받고, 다시 일왕부인이 죽으며 3년을 감형받아 4년 8개월만에 출옥하게 됩니다. 참 재미있는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결국 우리나라는 연합군에 의해 독립을 맞게 되고, 또한 연합군에 의해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러나, 김구 선생님은 나라가 먼저지 사상이 먼저가 아니라며 통일을 주장합니다. 

이때, 김구 선생님이 북한의 조선어학자 김두봉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김두봉님과의 인연은 상하이 임시정부시절부터입니다. 당시 고생만하던 김구 선생님의 부인이 사고로 사망을 하자, 가난했던 형편으로 그냥 국립묘지에 매장을 하려고 하자, 상하이에 있던 동포들이 평생을 고생만 하던 분을 마지막까지 그럴 수 없다며 모금을 하여 묘비를 세워주게 됩니다. 이때 묘비 글을 김두봉님이 적는데 특이하게도 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이라는 글을 적습니다. 이는 숫자대신 자음으로 대신 한 것으로 4222년 3월 19일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이후 한글학자들에게도 좋은 연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두봉님은 사회주의자로 좌우익 독립운동을 전개하시던 김구 선생님의 뜻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김구 선생님은 열강에 의해 나라가 나뉘면 그들의 필요에 의해 분명히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이후는 더욱 통일이 어려우니 그러기 전에 통일을 해야한다고, 또한 후세에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친일파를 모두 없애야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런 김구 선생님을 곱게 볼 리 없는 친일파는 육군 소위 안두희를 시켜 김구 선생님을 암살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이렇게 민족의 큰 별은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 날은 6.25사변이 일어나기 1년 전 6월 26일입니다.
이후, 김구 선생님의 우려는 하나도 빠짐없이 이 땅에 벌어지게 됩니다.
이외에도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점차 엄숙해지더군요.


백범 김구 기념과의 2층에는 김구 선생님의 묘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묘소를 발견한 아이들이 굳이 큰 절을 하고 싶다고 해서 절을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런데... 그 절이 아니라니까... ^^;

백범 김구 기념관을 다 둘러본 후 오후에 있는 '안녕하세요, 김구 할아버지'를 체험하러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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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 백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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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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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oer.christianlouboutinukr.com/ BlogIcon christian louboutin outlet 2013.04.06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라,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